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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여행] 봉긋 솟은 왕릉, 그 속에 숨쉬는 1,500년 전 아라가야의 역사를 만나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등재 함안 말이산 고분군

로드그래퍼 2014. 11. 25. 13:40


[함안여행] 봉긋 솟은 왕릉, 그 속에 숨쉬는 1,500년 전 아라가야의 역사를 만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등재 함안 말이산 고분군

 

함안군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분지로 되어 있고 서쪽과 북쪽에는 남강과 낙동강이 흐르고, 동쪽과 남쪽은 600m가 넘는 산이 둘러싸고 있다. 그 중앙부에는 너른 들이 있는데, 그곳에 낮은 구릉으로 된 말이산(末伊山)이 자리하고 있다.

 

아라가야인의 타임캡슐 말이산(末伊山)! 말이산이란 '머리산'의 소리음을 빌어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 즉 '왕의 무덤이 있는 산'이라는 의미로써 우두머리의 산이다. 말이산에는 고분들이 열 지어 있는데 말이산 고분군이라 하며, 말이산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들 무덤이 조성되어 있는 고분군으로 약 500년간 찬란했던 아라가야의 고분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다.

 

2013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회의에서 고대 가야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고 2017년에 세계문화유산 정식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원전후 부터 6세기 중반까지 만들어진 이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성립, 발전, 멸망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각종의 큰칼, 갑옷, 말갑옷, 새가 달린 비늘쇠(有刺利器)같은 철제품과 금, 은, 유리, 옥으로 만든 장신구들은 아라가야 왕의 강력한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아라가야의 고분은 널무덤 - 덧널무덤 - 구덩식돌덧널무덤 - 돌방무덤의 과정으로 변화하였는데 그 중 덧널무덤과 구덩식돌덧널무덤으로부터 많은 양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가야는 한반도 남부의 낙동강, 남강, 황강과 남해안을 끼고 성장한 나라다. 삼한시대 변한 12개 나라 중 하나였던 변진안야국이 3~4세기에 급성장하여 아라가야로 변모하였다. 아라가야의 중심지인 경상남도 함안은 지리적으로 외래문화와 교류하고 독자적인 대외교섭창구를 확보하는데 유리하여 후기가야를 주도하는 맹주국으로 성장하였으며, 왜(倭)와도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말이산고분군은 가야시대의 고분군 중 최대 규모로서 경상남도 함안을 중심으로 한 아라가야의 왕과 지배자들의 묘역으로 이곳에는 선사인의 무덤과 집자리, 유물조각들과 함께 고대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이 묻혀있어 찬란했던 아라가야의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말이산고분군으로 가는 방법은 함안군청에서 올라가는 방법과 함안박물관에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지난번에는 함안군청 쪽에서 올라갔었는데 이번에는 함안박물관 쪽에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고분군으로 향하는 길은 잘 정돈되어 있다. 마치 잘 정비해놓은 뒷동산의 산책로 같다.

 

 

 

 

 

 

 

 

 

불꽃같이 찬란했던 아라가야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한반도의 타임캡슐이다. 원시적인 선사시대부터 집단의 구성을 가진 구석기, 신석기를 지나 부족국가 시대인 청동기 문화를 비롯하여 삼국정립의 기틀이 된 철기시대에 이르는 한반도의 역사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고분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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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군의 능선위에 올라서니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 속에 자리 잡은 함안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말이산 구릉은 남-북으로 약 1.9㎞ 정도 길게 뻗은 주능선과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여덟 갈래의 가지능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말이산의 높은 산등성이에 위치한 고분에서 내려다 보면 원래의 모습은 지금보다 북동쪽으로 더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농지개혁과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진주-마산간 도로와 철도의 건설로 급격한 도시화에 의해 북쪽 능선 일부가 훼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천천히 걷다보면 길 따라 울퉁불퉁 솟은 고분이 모습을 드러낸다. 1기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3~4기씩 또는 그 이상이 모여서 발길을 붙잡는다. 1기만 덩그러니 놓였다면 심심하고 볼품없을 테지만, 여러 기가 모여 둥근 봉분이 중첩되니 그 풍경이 볼수록 신기하고 멋지다.

 

 

 

 

 

 

 

아라가야를 포함해 성산가야(성주), 금관가야(김해), 소가야(고성), 대가야(고령), 비화가야(창녕)를 6가야라고 하였다. 아라가야는 광개토왕비와 일본사기에 기록될 정도로 일본과의 교류를 주도하며 세력을 떨쳤던 왕국이지만, 지금은 세월의 흐름 속에 묻혀버린 왕국이 되었다. 당시의 왕들은 당시의 화려했던 아라가야의 기억을 가지고, 100여기의 고분 속에 잠들어 있다.

 

 

 

 

 

 

 

 

말이산 고분군은 실제 봉토무덤은 37기다. 하지만 흔적이 남아 있는 것들까지 합하면 100여기에 이른다고 한다. 비바람과 세월을 견대지 못하고 봉토가 침식되어 그 원형을 잃어버린 것까지 포함하면 1,000여기 이상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녕왕릉, 흥덕왕릉... 이런 식으로 신라의 왕릉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야의 왕릉은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 불린다. 00호분... 이렇게 말이다. 잊혀졌던 1500여년의 역사 탓이다. 오랜 세월 잊혀졌던 아라가야의 왕릉은 근래의 발굴조사를 통해  불꽃무늬토기, 수레바퀴모양토기 등 독특한 양식의 토기들과 쌍용문 둥근고리큰칼, 투구, 갑옷, 말갑옷 등 다양한 철기들을 출토되었는데 이를 통해 신라, 백제, 대가야 등과 함께 고대 한반도 남부를 호령하면서 '철의 왕국'으로 불리었던 아라가야의 우수한 문화상을 엿볼 수 있다.

 

불꽃무늬토기 - 함안박물관

 

수레바퀴토기 - 함안박물관

 

 

 

 

 

1호분부터 37호분까지 있는 말이산 고분중에서 2호분부터 12호분까지는 군청 뒷 언덕에 오밀조밀 모여있는데 1호분와 13호분부터 37호분까지는 좀 떨어져있다. 13호분부터 37호분까지는 이런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야 만날 수 있다.

 

 

 

 

 

 

오솔길을 따라와 19호분과 조우했다. 고분군을 거니는 기분은 문화유산 유적지를 도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고향 뒷동산을 거니는 듯 한 포근함이 느껴진다.

 

 

 

 

Nov. 11. 2014
함안 말이산고분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