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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여행]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전설을 간직한 서산 부석사

로드그래퍼 2011. 9. 30.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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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석사의 이야기약 3개월전에 포스팅했었던 산사에서 즐기는 차 한잔의 여유에서 이어진다. 그러고 보면 참 게으르다. 3개월전에 다녀온 이야기를 이제서야 포스팅하고... 생업으로 바빠서 그랬다고 살짝 변명을 해본다.

 

부석사... 부석사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단풍나무길과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무량수전이 있는 영주 부석사가 생각날 것이다. 나 또한 당연히 무량수전을 떠올렸다. 도대체 서산 부석사와 영주 부석사는 어떤 유사함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서산 부석사에 대해서는 두가지 창건신화가 있는데, 그 두 가지 창건설화 중의 하나가 영주 부석사의 창건설화와 일치한다. 이곳의 창건연대와 연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고 한다. 그와 관련한 설화는 두가지 있는데 첫째는 677년(문무왕 17년)에 의상이 창건했다는 설이고, 둘째는 고려말의 충신 유금헌이 나라를 잃은 한을 품고 물러나 이곳에다 별당을 짓고 글을 읽으면서 지내다가 그가 죽자 승려 적감이 별당을 사찰로 바꾸었는데 사찰 이름도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섬이 마치 뜬 것처럼 보여 부석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앞에건 경북 영주의 부석사 설화와 같아 후자의 설화가 더 신빙성이 있지 않나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부석사는 처음 세워진 다음 조선 초기에 와서 무학이 고쳐 지었고 근대에는 만공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선풍(禪風)을 떨치기도 하였다고 한다.

 

부석사를 들어가보면 느끼겠지만 일반적인 사찰의 형식과는 좀 다르다. 일자로 길게 낸 심검당이며 왠지 절집보다는 사람이 살던 곳이 아니었나 싶은 느낌이 드는걸 보면 후자의 창건설화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부석사 운거루 옆에 자리잡고 있는 도비산 다원에서 차한잔의 여유를 즐기느라, 부석사경내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람들이 내려온다. 아~ 그렇다. 차를 마시러 온것이 아니라 사찰에 온것이란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사자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간다. 영주 부석사에 가본적이 있는 분이라면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들어보셨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곳 서산 부석사에서 전하는 설화도 아주 흡사하다.

 

중국으로 공부하러 간 의상대사, 의상대사를 사랑한 선묘낭자... 의상대사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려고하자 의상대사에게 마음을 고백한 선묘낭자는 불자로서 받아들일 수 없음을 전달받았을 것이다. 의상대사가 배를 타고 돌아가려고 하자 선묘낭자도 따라나선다. 하지만 만류하는 의상대사, 그래서 선묘낭자는 바다로 뛰어들고 만다. 그리고 선묘낭자는 용으로 변하여 의상대사를 따라 다닌다.

 

의상대사는 자신 때문에 죽은 낭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짓기도 한다. 절터를 알아보던 중, 도비산 중턱, 산세가 좋고 바다가 보이는 이곳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절을 짓게 되는데, 절을 완성해갈 즈음, 마을 주민들이 반대를 하고 불을 지르고 부수어 버리려 하자 큰 바위가 공중에 떠오더니 주민들을 행해 호통을 친다. - 물러가지 않으면 머리를 부수어버리겠다.

 

혼비백산 물러간 사람들.. 의상대사는 낭자가 용으로 변하고 그 용이 다시 바위로 변하여 도와주었다고 생각한다. 그 바위는 절을 다 지을때까지 바위는 절이 보이는 바다에 떠 있으면서 지켜보았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이 돌을 물위에 떠있다 해서 부석이라고 부르고 절이름도 부석사라고 지었다고 한다. 영주 부석사의 설화와 동일하다해보 무방한 설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영주 부석사에는 뜬돌이 뒷켠에 있다면 서산 부석사는 바다쪽으로 날아가서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도비산다원이 주는 운치와 쌍화차 맛에 반해서 부석사 경내로 가는 것을 잊고 있었던 일행들...^^ 

 

 

 

 

 

 

아담한 사찰, 도비산 부석사

뚜렷한 역사적 기록은 많지 않지만 의상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극락전의 상량기와 1330년 부석사에서 조성된 아름다운 관세음보살이 지금 일본의 대마도 관음사에 모셔져 있어 처년 고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무학스님이 근대에서는 한국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만공 대선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수행정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인중지룡을 걸러내는 곳이라는 목룡장과 지혜의 검을 찾는 곳이라는 심검당 현판은 경허스님의 글이고, 부석사 큰방에 걸려있는 부석사 현판은 만공스님이 70세에 쓰신 글이라고 한다.

 

큰 법당인 극락전(極樂殿)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는 목룡장(牧龍莊)과 심검당(尋劒堂) 큰방은 누워있는 소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심검당 아래의 약수는 우유(牛乳)약수라고 하고, 법당 옆의 큰 바위는 소뿔의 형상을 하고 있다. 법당 건너편 개울 아래에는 소가 마실 물이 흐르는 구수통(여물통)이 있는데, 이 구수통에 물이 계속 넘치면 부석사에서는 먹거리 걱정이 없다고 한다.

 

 

 

 

 


 

 

 

 

극락전

극락전은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사찰 당우(堂宇) 중의 하나로써 대웅전 다음으로 많으며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고 한다. 주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로 봉안된다. 후불탱화로는 극락정토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를 주로 봉안하며, 그밖에 극락의 구품연화대를 묘사한 극락구품탱화(極樂九品幀畵)나 아미타탱화를 봉안하기도 한다. 극락정토왕생에 대한 믿음이 강했기 때문에 대웅전과 견줄 만큼 화려하게 꾸몄다. 불단은 꽃무늬와 비천(飛天)으로 장식하고, 주불 위에는 닫집인 천개(天蓋)를 만들고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이나 극락조 등을 조각해 장식하기도 한다. 극락전이 본당인 절에서는 극락을 의역한 '안양'(安養)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안양교·안양문·안양루 등을 갖추기도 한다.

 

 

 

 

 

 

 

 

스님들이 수행처인 정진선원

 

 

 

 

 

산신각

산신각은 산신(山神)이 모셔져 있는 건물로써 불교사찰 내에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2가지 경우가 있다. 불교의 사찰과 관계없이 지어진 산신각은 산악숭배(山岳崇拜)나 마을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이때 산신각은 대체로 1평 정도의 집으로 산신당이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산신은 보통 호랑이와 함께 있는 백발에 수염이 있는 신선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위패는 '○○산신위(山神位)' 또는 '○○산령위(山靈位)'라 해서 산의 이름을 적어놓는 경우와 산의 이름은 없이 그냥 산신위 또는 산령위라 적어두는 경우가 있다. 건물 정면에 현판이 걸려 있는데, 산신각이라는 명칭 외에 산신당·산명당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한다. 산신은 지역수호신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보통으로 산뿐만 아니라 산 주변의 지역을 관장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산은 한 지역공간의 중심이며, 산신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살펴주고 지켜주는 존재로 믿어졌던 것이다. 한편 산신각에 모셔지는 산신의 모습이 일반적으로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노인으로 그려지는 것을 생각해볼 때, 산신신앙이 신선사상(神仙思想)과도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불교사찰에 있는 산신각은 고유신앙의 수용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민간의 신앙이 두터운 칠성(七星)도 같이 모셔졌다. 그 명칭은 산신각·칠성각(七星閣)·삼성각(三聖閣) 등 일정하지 않다.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外護神)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대부분의 사찰에는 산신각이 갖추어져 있으며,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신신기도가 많이 행해지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閣)이라 하는데, 이는 한국 불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 한국 불교의 토착화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산신각에는 보이는 바와 같이 중앙에 산신, 우측에 산묘낭자, 좌측에 용왕이 모셔져 있다. 선묘낭자 배경 그림을 보면 부석사 창건 설화에 담겼던 이야기들이 표현되어 있다. 용으로 변한 선묘낭자가 의상대사가 탄 배를 지켜주는 듯 하기도 하다.

 

 

 

 

 

 

산신각에서 내려보면 금종각이 보인다. 

 

 

 

 

 

 

 

 

 

산신각 뒤로 계단길을 따라 올라오면 만공스님이 수행을 하였던 토굴로 가는 길로 이어진다. 만공 월면(滿空 月面 1871~1946) 스님은 근대 한국 선(禪)의 중흥조인 '경허스님'의 제자로 스승의 선지를 충실히 계승하여 선풍을 진작시킨 위대한 선사이다 

 

 

 

 

 

 

 

 

 

아무런 사연이 없는 바위인데 부석사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는 바위라 생각하고 찍은 사진... 위에서 언급한것처럼 영주 부석사와는 달리 서산 부석사에는 사찰의 이름의 유래가 되는 바위가 없다. 

 

 

 

 

 

 

토굴까지 보고 내려와 부석사를 떠나려 하니  도비산 다원의 모습이 보인다. 쌍화차 한잔 더 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부석사 가는길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 → 서산(1시간50분) → 서산버스터미널 → 부석면소재지(20분) → 부석사(2.5km)

대전(동부버스터미널) → 서산(3시간) → 서산버스터미널 → 부석면소재지(20분) → 부석사(2.5km)

 

 

 

 

충남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160

041-662-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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