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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여행] 백제가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

로드그래퍼 2011. 8. 3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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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마애삼존불
국보 제 84호로써 2.8미터 높이로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백제시대 마애삼존불상은 1962년 보원사 발굴 작업중에 인근 주민들의 제보로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이는 화려하게 꽃피웠던 백제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곳 주민들의 "숲속에서 산신령이 처와 첩을 끼고 살고 있다"라는 아리송한 표현에 발굴조사원들이 달려가보니 삼존불이 바위 절벽에 새겨져 있더라는 것이다. 바로 국보로 지정되고 풍화작용을 우려해서 보호각을 세우게 되었다.


보호각이 있었던 당시에 마애 삼존불을 찾았었는데 전혀 감흥이 없었다. 많이 정화해서 그 당시의 내 심정을 표현한다면 "백제의 미소는 무슨~"정도가 될듯하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서 다른 모습의 미소를 보여준다는데 보호각으로 햇빛을 막아버렸으니 미소가 보일리가 있는가! 보호각이라니... 그자리에서 천년의 세월을 지내온 마애불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보호각을 설치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수운 일인가?


그리고 작년 보호각이 철거된 마애삼존불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그날 날씨가 비협조적이어서 백제의 미소를 전혀 볼수가 없었다. 사실 날씨가 비협조적이라서 미소를 볼수 없었다고 생각한것이 아니라 백제의 미소라는 말이 상당히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래 사진은 작년 어떤 흐린날 찍은 사진이다. 웃는가? 미소를 보내는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내 생각에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 예전에 보호각이 있었을때, 그리고 작년에는 분명 나에게 미소를 보내지 않았었다. 그리고 다시 이곳에 올일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인들과 서산에 왔다. 솔직한 심정은 내가 지인들에게 전국 최고라고 떠들고 다니는 왕산포에 가서 연포탕이나 먹었으면 했다. 그런데 의외로 마애삼존불을 못본분들이 많았다. 모두가 가보고 싶다고 하는데 그 분위기에 초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따라나섰다. 입구에 도착해서는 올라갈까 말까 하는 갈등에 빠졌다. 그냥 파라솔 아래 앉아서 시원하게 맥주나 한캔 마실까 생각하다가, 그냥 따라 나섰다.

 

 

 

그런데...

웃는다...

마애삼존불이 나에게 화사한 미소를 보낸다. 아~ 이래서 백제의 미소라고 하는구나. 이 얼마나 멋진 미소인가! 예전에 누군가가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를 "모나리자의 미소"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서 실소를 한적이 있었는데 이 미소는 모나리자의 미소를 능가하는 미소다. 윗 사진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다른 보습을 볼 수 있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그 미소의 모습이 달라진다고 한다. 보통 오전 10시경에 가장 화사한 미소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오전의 미소는 보았다. 오후의 미소는 또 어떤 모습일지가 궁금해진다. 이 미소를 보기전까지는 다시는 올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던 이곳에 다시 올일이 생기고 만것이다. 

 


 

 

 


서산 마애삼존불로 가는 길의 초입은 이렇게 나무데크로 길이 만들어져 있다.

 

 

 

 

 

 

나무데크길이 끝나고 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산길이 나온다. 정돈된 느낌의 나무데크길보다는 이런 산길이 정겹게 느껴진다.

 

 

 

 

 

 

 

삼존불 관리사무소에서 신청하면 문화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관문인 불이문이다. 예전에는 불이문 왼쪽으로 삼존불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초입부터 마애삼존불까지의 길은 가벼운 산책로라고 생각하면 좋을듯하다 저질체력이신 분도 그리 힘들지 않게 올라갈만한 길이다.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이 양볼이 터질듯한 화사한 미소로 우리 일행을 반긴다. 가운데에 본존(本尊)인 여래가 서있고 양쪽에는 우협시보살(右脇侍菩薩)이 서 있고, 좌협시보살(左脇侍菩薩)은 한 다리를 다른쪽에 포개 앉은 반가상(半跏像)을 하고 있는 특이한 배치이다. 

 

 

 

가운데 본존은 둥근얼굴에 눈을 한껏 크게 뜨고 두툼한 입술로 벙글벙글 웃고 있다. 양어깨를 가린 법의  안쪽에 속옷 매듭 자락이 매우 선명하여 이 부처님 조각의 섬세함과 두드러짐을 느끼게 한다. 광배는 전체적으로 보주형을 이루고 있는데 안쪽에 핀 연꽃 위에 불꽃 줄기가 은근하게 타오 른다. 잎이 두꺼운 연꽃 대좌에 늠름하게 서서 양손을 모두 약지와 새끼를 구부린 채 삼국시대 불상들의 독특한 손모양을 하고 있다. 한 손은 올리고 한 손은 내려 두려움을 물리치고 소원을 받아 준다는 여원인(如願印)을 하고 있어 넉넉한 미소와 함께 부처의 넓은 품을 느끼게  한다. 

 

좌협시보살은 키가 자그마한데 마찬가지로  연꽃대좌에 서있고 두손을 가슴께 모아 약합같은 것을 쥐고 있다. 보관과 옷 장식이 화려한 편이고 연꽃 광배 바깥으로 단순한 선으로 보주 모양을 나타내었다. 볼이 도톰한 얼굴에는 작은 눈에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천진한 웃음과 함께 전체저그로 4등신의 비례를 보여 어린아이상임을 느낄 수 있다. 

 

우협시보살은 고개를 약간 위로 틀어 귀엽게 웃는 모습, 어딘지 짧은 듯한 4등신의 팔다리 비례와 통통하게 오른 볼 등이 네다섯 살 한창 귀여운 어린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한 다리는 내리고 한 다리만을 반대편 무릎에 올려 반가부좌를 하고 한 손을 팔꿈치를 구부려 뺨을 괴고 생각하는 자세로 앉아 있다. 이런 미륵반가사유상은 7세기 초 무렵 삼국에 공통했던 신앙경향을 보여 주는 상으로 이 마애불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오랜 세월과 역사를 가진 불상임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다른 장치 없이 보존상태가 나쁘진 않은데 마애석굴의 특성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동동남 30도, 동짓날 해 뜨는 방향으로 서 있어 햇볕을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마애불이 새겨진 돌이 80도로 기울어져 있어 비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도록 계산된 치밀함은 백제인, 우리 조상의 슬기로움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해 본다.  

 

 

 

 

마애불의 기원과 전파
인도에서는 일찍이 암벽을 뚫어 예배당, 강당 승당(僧堂)등을 만든 대규모의 석굴사원(石窟寺院)이 크게 조성되었다. 이들 석굴사원은 그 자체가 장려한 건축이고, 위대한 조직이며   또한 화려한 벽화들로 가득한 장엄한 것이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숭엄성을 만족시켜 주는 쾌적한 장소였으므로 다투어 조성되었던 것이다. 아잔타(Ajanta)의 석굴 같은 것은 바로 인간이 남긴 기적인 문화유산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중국도 인도의 석굴사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둔황(敦煌), 운강(雲崗), 룽먼(龍門)같은 광대무비한 석굴사원이 조성되었는데 차츰 시대가 지남에 따라 특히 산동(山東)같은 곳에서는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성하고 앞에의 목조전실(木造前室)을 결구(結構)하는 마애석굴(磨崖石窟)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600년경의 백제는 이들 산둥지방의 마애석굴 양식을 수집하여 일종의 석굴사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서산(瑞山)지방의 운산마애삼존(雲山磨崖三尊)과 태안마애삼존(泰安磨崖三尊)등 둘 뿐이지만 모두 마애석굴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귀중한 작품들인데 이러한 마애불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지닌다.


첫째, 선사시대의 암벽조각의 전통이 잘 계승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울주 천전리의 대곡리 암벽조각이다.


둘째, 마애불은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해당지역의 조각작품임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제작연대를 밝히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조각의 유파(流派)연구나 국적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런 것을 밝혀서 불상이 어느시대, 어떤 사회의 소산이고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밝힐 수가 있다.


셋째, 마애불은 입체적 원각상보다는 조각적인 면에서 약간 떨어지지만 얕은 돋을 새김이거나 선각일 경우 조각이 용이해서 환조각(丸彫刻)일 경우 표현하기 어려운 불경의 설법내용이나 불전도(佛傳圖)같은 설명적인 내용까지도 조각이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마애불은 불교미술 가운데 조각적이면서도 회화적인 특징이 있는 독특한 부분으로 의의가 크다.

마애불은 일반 마애조각과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기법에 따라 나누거나 재료, 주제에 따라 나눌수도 있다. 기법에 따라 나누는 방법은 마애불 자체가 기법에 따라  구분된 것이라서 마애불에 가장 중요한 구분 방법이다. 이 구분방법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오목새김으로, 음각인데 바위면을 평평하게 다듬은 뒤 깊이 파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예로 경주 남산 삼릉계 선각 마애 삼존불상과 법주사 마애 창건연시조각 등을 들 수 있다. 나머지 하나는 돋을 새김인 양각으로 대상 불상을 외형을 그대로 둔 채 주위 바위면을 제거함으로써 불상의 형태가 두드러지게 하는 기법이다. 낮은 돋을 새김으로 새긴 것은 경주 남산 탑곡서주 사방불, 경기도 광주 약사 마애불이 있고, 높은 돋을 새김으로 새긴 것은 서산 마애불, 예산 사방불, 굴불사 사방불, 칠불암 본존불 등 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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