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문화ⓝ예술

새벽을 기다리며 / 도종환

로드그래퍼 2009. 11. 3. 02:41

 

 

 

 

 

† 새벽을 기다리며 / 도종환

 

 

 

 

 

 

 

 

 

 

    검푸른 하늘 위로 싸아하게 별들이 빛나고 
    온 들을 서리가 하얗게 덮는 동안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밤새도록 서리에 덮힌 들길을 걸어

    고개 하나를 또 넘어야 한다. 
    가시숲 헤치고 잡목수풀 지나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아직 길이 끝나지 않은 저 숲에는 녹슨 철망도 있다 하고 
    발을 붙드는 시린 계곡물과 천길 벼랑도 있다 한다. 
    잠 못 드는 이 밤 산짐승 울음소리가 가가이에 들리고 
    어쩌면 겨울이 길어 
    바람 또한 질기게 살을 때리며 뒤를 따라오기도 할 것이다. 
    눈물로 가야 할 고난의 새벽이 가까워오는 동안 
    이 길의 첫발을 우리로 택하여 걷게 하신 뜻을 생각했다. 
    나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함께 떠나기로 한 벗들을 생각했다. 
    어찌하여 우리가 첫새벽을 택해 묵묵히 이 길을 떠났는지 
    어찌하여 우리의 싸움이 사랑에서 비롯되었는지 
    우리가 떠나고 난 뒤 남겨진 발자국들이 길이 되어 
    이 땅에 문신처럼 새겨진 뒷날에는 꼭 기억케 될 것임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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